암호화폐 규제는 왜 필요한가, ‘차단’이 아닌 ‘정리’로 보는 ETF와 제도권 통로
교통법규가 ‘막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만드는 것’이라는 감각부터 생각해 보겠습니다
운전을 해보시면 규칙이 없는 길이 얼마나 불안한지 금방 떠올리실 수 있습니다. 신호등이 없고 차선이 없고, 우선순위도 정해져 있지 않다면, 도로는 더 빨리 달리는 사람이 이기는 공간이 아니라 서로 눈치를 보며 멈칫거리는 공간이 됩니다.
규칙이 많아질수록 답답해 보일 수는 있지만, 그 규칙이 만들어내는 효과는 ‘차단’보다 ‘정리’에 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어디서 멈추고 어디서 가는지, 사고가 나면 누구 책임인지, 위험한 행동은 무엇인지가 정리되면 길은 오히려 더 넓게 쓰일 수 있습니다.
암호화폐를 둘러싼 규제도 이런 관점으로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규제라는 단어는 종종 “막는다”는 이미지로 소비되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영역이 사회 안에서 다뤄지기 위한 ‘정리 방식’으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특히 암호화폐처럼 기술과 금융이 겹치는 영역에서는,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금지되는지보다 “어떤 통로로 들어오면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되곤 합니다.
규제는 ‘기술을 멈추는 장치’가 아니라 ‘관계와 책임을 정하는 장치’일 수 있습니다
초보의 입장에서 규제를 떠올릴 때 가장 헷갈리는 지점은, 규제가 곧 혁신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규제를 기능적으로 보면, 규제는 기술의 내부 구조를 설계하는 도구라기보다, 그 기술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관계를 정리하는 도구에 가깝습니다.
누가 무엇을 제공하는지, 소비자는 어떤 정보를 받아야 하는지, 문제가 생기면 어떤 방식으로 처리되는지, 부정행위나 착오를 줄이기 위해 어떤 기준이 필요한지 같은 것들이 규제의 언어로 정리됩니다.
교통법규도 자동차 엔진을 어떻게 만들지에 간섭하기보다, 운전자와 보행자, 도로 운영 주체 사이의 규칙을 정합니다. 암호화폐 규제도 비슷하게, “무엇이 위험하니 다 막자”라기보다, 시장이 커졌을 때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줄이고 책임 구조를 만들기 위해 등장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규제를 ‘차단’으로만 보면, 왜 어떤 통로는 열리고 어떤 통로는 정교해지는지 이해하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ETF는 ‘제도권 통로’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일 수 있습니다
ETF(상장지수펀드)는 한 문장으로 말하면 “거래소에서 주식처럼 사고팔 수 있는 펀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ETF의 의미를 암호화폐의 맥락에서 볼 때 중요한 지점은, ETF가 암호화폐를 더 좋게 만든다거나 덜 위험하게 만든다는 단정이 아니라, 제도권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형식’과 ‘절차’가 무엇인지를 드러낸다는 점입니다.
많은 사람이 암호화폐를 직접 보유하는 방식은, 지갑 관리나 거래 방식, 보관 책임 같은 요소가 함께 따라옵니다. 반면 제도권 통로는 보통 “누가 보관 책임을 지는지”, “어떤 방식으로 가격이 반영되는지”, “어떤 공시와 감시 체계가 붙는지” 같은 절차를 포함합니다.
ETF는 이런 절차를 패키지로 묶어, 기존 금융 시스템이 익숙한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게 만드는 통로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ETF는 암호화폐의 본질을 바꾸는 마법의 도구라기보다, 사회가 이미 갖고 있던 ‘거래의 규칙’ 위에 새로운 대상을 올려놓는 방식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때 ETF의 등장은 “이제 끝났다” 같은 확정적 서사를 만들기보다는, 암호화폐가 완전히 바깥의 문화로만 존재하기보다, 일부 기능과 역할이 제도권의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이 진행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읽힐 수 있습니다. 교통법규가 생기면 도로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도로를 쓰는 방식이 정리되듯이 말입니다.
규제가 ‘정리’로 작동할 때 생기는 변화는 어디에서 나타날까요
규제가 정리로 작동한다는 말은, 규제가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무엇이 ‘정리’의 대상이 되는지 보면 규제의 역할을 조금 더 현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정보의 질입니다. 금융과 닿아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는 정보를 비대칭적으로 만들기 쉬운데, 규제는 공시, 보고, 설명 의무 같은 형태로 정보의 기본선을 맞추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둘째는 책임의 위치입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이용자가 어디에 문의하고 어떤 절차로 해결하는지, 누가 어떤 책임을 지는지가 정리되면, 시장은 덜 불투명해질 수 있습니다.
셋째는 접점의 표준화입니다. 제도권 통로는 기존 금융 인프라와 연결되기 때문에, 거래 방식, 보관 방식, 회계 처리 같은 것들이 어느 정도 표준화될 가능성이 생깁니다. 이 표준화는 자유로운 실험을 줄이는 측면도 있을 수 있지만, 동시에 다양한 참여자들이 같은 규칙 아래서 움직일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도 합니다.
교통법규가 있으면 운전자가 마음대로 달리기는 어렵지만, 대신 낯선 도시에서도 도로를 이용할 수 있는 것처럼요.
‘차단’의 언어로만 보면 놓치기 쉬운 것들
암호화폐 규제를 차단으로만 이해하면, “규제는 시장을 막는다” 혹은 “규제는 자유를 빼앗는다” 같은 단순한 감정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규제라는 프레임 안에서 ‘허용되는 형태’가 함께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즉 금지와 허용은 대개 한 세트로 움직입니다. 무엇을 못 하게 하는지뿐 아니라, 무엇을 하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는지가 정리되는 과정이 규제의 핵심일 수 있습니다.
ETF 같은 제도권 통로는 이런 면을 잘 보여줍니다. 암호화폐가 사회 안에서 다뤄지려면, 기존 시스템이 요구하는 절차와 책임 구조가 있고, 그 요구에 맞춘 상품 형태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암호화폐를 하나의 정답으로 수렴시키는 과정이라기보다, 여러 역할 중 일부가 제도권의 규칙과 맞물려 정리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규제는 ‘없어져야 할 장애물’이라기보다, 복잡해진 교차로에 신호등을 세우는 시도처럼 이해될 수 있습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규칙은 불편함만큼이나 예측 가능성을 줍니다
교통법규가 없는 도로에서는 운전이 자유로워 보이지만, 사실은 더 많은 긴장과 위험이 따라옵니다. 규칙이 생기면 속도가 제한되기도 하지만, 대신 다른 차가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할 수 있고, 사고가 났을 때의 처리도 정리됩니다.
암호화폐 규제도 비슷한 감각으로 접근하면, “차단”이라는 한 단어보다 “정리”라는 단어가 더 가까울 때가 있습니다. ETF와 같은 제도권 통로는 그 정리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이해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시장의 모습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규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면, 뉴스에서 등장하는 규제 이슈도 단순한 충돌 장면이 아니라, 새로운 영역이 사회적 규칙 안으로 들어오면서 생기는 정리의 과정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제한되는지를 넘어서, 어떤 통로가 만들어지고 어떤 책임이 배치되는지가 함께 보이기 시작할 때, 규제는 ‘막는 이야기’가 아니라 ‘정돈되는 이야기’로 조금 더 차분하게 읽힐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및 출처
- Investopedia –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본 개념
-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 – 결제 시스템과 디지털 화폐를 다룬 국제 금융 보고서
- World Economic Forum – 블록체인과 디지털 자산에 대한 글로벌 정책·산업 인사이트
- CoinDesk – 암호화폐 구조와 흐름
- Brookings Institution – 암호화폐 규제를 ‘억압’이 아닌 제도화 과정으로 분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