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란티어-퍼셉타 소송으로 보는 AI 인재 이동의 경계와 ‘통제’의 언어
AI 인재 전쟁이 소송으로 번질 때 보이는 것들
AI 산업 뉴스가 기술 성능이나 투자 규모만으로 흘러가지 않는 순간이 자주 찾아옵니다. 이번에는 “누가 더 좋은 모델을 만들었나”가 아니라 “누가 누구의 사람을 데려갔나, 무엇을 가져갔나”가 전면으로 나왔습니다.
팔란티어(Palantir)와 신생 AI 스타트업 퍼셉타(Percepta) 사이의 분쟁은, AI 경쟁이 결국 사람과 지식, 그리고 계약 문서의 해석으로도 움직인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로 읽힙니다. 특히 이 사건은 ‘비밀을 훔쳤는가’라는 단일 질문을 넘어서, 퇴사와 창업이 허용되는 경계가 어디인지, 그리고 그 경계가 과도하게 넓어질 때 무엇이 달라지는지까지 생각하게 만듭니다.
기술 산업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법과 제도가 그 속도를 따라잡는 방식이 더 거칠어질 수 있다는 불안도 함께 드러납니다.
사건의 기본 구도는 ‘퇴사 후 창업’이 아니라 ‘계약 해석’입니다
퍼셉타는 팔란티어 출신 인물들이 세운 AI 스타트업으로, 벤처펌 제너럴 캐털리스트(General Catalyst)가 소유한 회사입니다.
팔란티어는 2025년 10월 퍼셉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며, 공동 창업자 두 명이 영업비밀을 가져갔고 인력을 빼갔으며, 또 다른 직원이 기밀 문서를 유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퍼셉타는 이런 혐의를 부인하면서, 팔란티어가 직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다른 사람들도 겁주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는 취지의 반박을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즉 이 분쟁은 누가 먼저 공격했느냐의 감정 싸움이라기보다, 퇴사자의 의무를 규정한 계약 문구를 어디까지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싸움으로 전환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퍼셉타가 단순히 “우리는 정당하다”라고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팔란티어의 해석이 너무 넓어서 사실상 AI 분야에서 일할 권리를 봉쇄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입니다.
비경쟁·비유인 조항이 왜 AI 산업에서 더 예민해지는가
이 사건에서 핵심 쟁점 중 하나는 고용계약에 포함된 비경쟁 조항과 비유인(직원·고객 유인 금지) 조항이 어떤 범위로 적용되느냐입니다.
퍼셉타의 주장에 따르면, 팔란티어가 해석하는 방식대로라면 해당 조항은 12개월 동안 전 세계 어디에서든 “AI로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것 자체를 막을 정도로 광범위해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AI 산업 특유의 문제가 드러납니다. AI는 특정 업종의 한 기능이 아니라, 거의 모든 산업의 문제 해결 도구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어 “AI를 사용한다”라는 기준이 너무 쉽게 모든 회사를 포함해 버릴 수 있습니다. 그 결과 비경쟁 조항이 원래 의도했던 ‘직접 경쟁사로의 이동 제한’이 아니라, ‘산업 전체에서의 이동 제한’처럼 작동할 위험이 생깁니다. 그래서 계약 문구가 조금만 넓어도, 기술자 입장에서는 사실상 일할 수 있는 공간이 급격히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영업비밀’은 무엇이냐보다 ‘어떻게 가져갔다고 보느냐’가 쟁점이 됩니다
팔란티어는 세 번째 직원인 조애나 코언(Joanna Cohen)이 퇴사 전후로 기밀 문서를 자신에게 보냈고, 개인 휴대전화로 회사 컴퓨터의 기밀 정보를 촬영해 보안 시스템을 피하려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서술은 보통 “의도적 유출”이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만들기 때문에, 분쟁은 사실관계뿐 아니라 행위의 맥락을 어떻게 해석할지가 중요해집니다.
퍼셉타는 이에 대해, 촬영한 내용은 팔란티어 웹사이트에 있는 공개 자료였고, 퇴사 절차(offboarding) 과정에서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화면을 캡처한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더 나아가 일부 업무가 신혼여행 초반 이틀에 걸쳐 처리되었고, 급하게 인수인계를 마치려는 선의의 전환 과정이었다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같은 행동이 ‘보안 회피’로 보일 수도, ‘급한 인수인계’로 보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영업비밀 분쟁은 늘 행위의 해석을 두고 싸우게 됩니다.
AI 산업에서 소송이 늘어나는 구조적 배경
이 사건은 고립된 분쟁처럼 보이지만, 같은 시기에 AI 업계에서 영업비밀과 반경쟁 행위를 둘러싼 소송이 늘고 있다는 흐름 속에 놓여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Elon Musk)의 xAI가 전직 직원과 경쟁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례, 그리고 데이터 라벨링 스타트업 스케일 AI(Scale AI)가 경쟁사 머코어(Mercor)와 전직 직원을 상대로 영업비밀 침해를 주장한 사례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AI 기업들이 공격적이다”는 도덕적 평가가 아니라, 산업 구조가 이런 충돌을 더 자주 만들어낸다는 점입니다. AI 경쟁에서 가장 비싼 자산은 데이터와 모델도 있지만, 그 모델을 만들고 운영하는 인재와 공정(프로세스) 역시 핵심입니다. 특히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에서는 한 팀의 이동이 제품 로드맵과 고객 계약, 투자 유치까지 동시에 흔들 수 있어, 기업들은 법적 수단을 방어막으로 쓰고 싶어질 수 있습니다.
소송이 남기는 메시지는 ‘승패’보다 ‘경계 설정’에 있습니다
퍼셉타가 “직원 이탈을 겁주려 한다”는 표현을 쓴 것은 감정적인 수사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법적 분쟁이 갖는 산업적 기능을 드러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소송은 단순히 손해를 보전하는 수단이 아니라, 다른 직원들에게 “이 경계를 넘으면 위험하다”라는 신호를 보내는 장치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우리는 정상적인 창업과 채용을 했을 뿐”이라는 메시지를 법정에서 확보하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분쟁의 핵심은 “누가 나쁜가”가 아니라, 지식 노동 시장에서 이동과 경쟁을 허용하는 경계가 어디에 그어질지입니다. 그 경계가 너무 좁아지면 혁신이 위축될 수 있고, 너무 넓어지면 기업의 내부 투자와 보안이 흔들릴 수 있다는 긴장도 함께 존재합니다.
이 사건을 국제질서의 언어로 읽어보면
희토류나 전력망 같은 인프라 이야기에서 자주 등장하던 ‘통제’라는 단어가, 이번에는 기업 내부의 인재와 정보로 이동해 등장합니다. 팔란티어 같은 기업은 정부·국방·대형 기관과의 프로젝트 경험을 갖고 있고, 이런 영역에서는 보안과 기밀 유지가 더욱 엄격하게 강조되는 문화가 형성되기 쉽습니다.
반면 AI 스타트업 생태계는 이동과 실험, 빠른 팀 빌딩을 전제로 성장해 왔습니다. 이 둘이 부딪히는 지점에서 소송은 단순한 기업 간 다툼을 넘어, 산업 규칙을 다시 쓰는 도구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결국 ‘주권’이 국가의 통제 경계를 뜻하듯, 기업 세계에서는 계약과 영업비밀이 그 경계를 설정하는 언어로 기능합니다.
어떠한 관찰 프레임이 필요한가
비슷한 소식을 접할 때는 “누가 누구를 고소했다”보다, 어떤 단어들이 세트로 등장하는지 보는 편이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영업비밀’이 등장할 때는 대개 ‘오프보딩’, ‘개인 기기’, ‘문서 반출’, ‘사진 촬영’ 같은 디테일이 따라붙고, 그 디테일이 곧 의도 해석의 무대가 됩니다.
‘비경쟁’이나 ‘비유인’이라는 표현이 나오면, 그 범위가 특정 경쟁사 제한인지, 아니면 산업 전반을 포괄하는지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또 “다른 직원들을 겁주기 위한 소송” 같은 표현이 등장하면, 이 분쟁이 손해배상보다 ‘규칙 설정’과 ‘신호 보내기’에 가까운 성격을 가질 수 있다는 점도 함께 떠올려 볼 만합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AI 산업의 소송 뉴스는 그저 흥미진진한 그들의 뒷이야기가 아니라, 경쟁이 어떤 방식으로 제도화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자료 및 출처: AI Startup Percepta Sued by Palantir Says Company Wants to ‘Scare Others’ From Leaving - WSJ
